[문호진*의사,교육평론가]
수능 해킹이란?
수능에 접근하는 올바른 풀이 방법이 교육과정, 교과서, 학교 같은 데서 배웠던 풀이 방법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여러 가지 풀이법들을 주입 받아서 그것을 최대한 빠르게 구사하는 훈련을 하는 것들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는 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내 컴퓨터를 해킹했다고 한다면 외부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에 빗대어 지금 벌어지는 현상들을 수능 해킹이라는 용어로 정의에서 말씀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루빅스 큐브라는 장난감이 있는데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사실 그 루빅큐브를 풀어내는 데는 해법과 공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복잡해 보이지만 공식에 맞춰서 해결을 해나가다 보면 짧은 시간 내에 맞출 수 있고, 그런 대회도 있습니다. 지금 수능 문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수능 문항이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풀어내는 공식이 있고, 반복 숙달을 하면 쉽게 풀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것을 ‘퍼즐식 사고’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퍼즐식 사고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공평하게 그 퍼즐을 푸는 환경에 놓여있다고 한다면 별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공정성의 측면에서요.
그런데 예를 들어서 A, B, C 학생 중에서 C 학생만 미리 수없이 맞춰보고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공식은 학생이 스스로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제공해준 공식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암기하는 식으로 대비를 했다고 한다면 그 시합을 과연 공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공정하지도 않고, 그리고 학생이 수행해야 하는 과정을 결국 사교육에 의존하는 면이 있는 것이죠. 저는 이 문제를 ‘사고의 외주화’라고 명명했습니다.
수능 해킹이라는 것은 수능 문제 풀이에 정상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어떤 여러 가지 방법들을 총칭하여 부른 것입니다. 사교육에서 전수하는 공식 같은 개념이 존재하고, 그것을 숙달시키기 위한 훈련들이 존재하고 그것을 학습해야만 결국에는 수능에서 고득점을 잘 받을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능의 역사에서 발견한 공통점
수능 해킹이 완성된 시기가 4기 수능(2014년 이후의 수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수능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해 드린 이유는 과거의 역사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능을 학교 수업과 직접적인 연계를 해달라 아니면 난이도를 일정하게 맞추자. 사교육 부담을 덜기 위해서 EBS하고 직접적으로 연계를 하자고 했는데, 기대효과에 대해서 피상적인 접근만 이뤄졌다는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교육이나 입시 자체에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작용을 해서 어떤 정책이 그 취지를 온전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런데 단선적으로 ‘EBS를 도입하면 사교육 부담이 줄어들겠지’하는 식으로 정책을 짜고, 정책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실제로 어떻게 느끼는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도입 취지와 완전히 어긋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제시되고 있는 해결책들은 ‘환자가 아프니까 진통제를 주자’는 식으로 단선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상황인데, 그런 식의 무신경함과 진단의 치밀하지 않음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어떤 해결책을 논의하기보다는 교육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정밀한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한 우리가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정립하는 과정이 좀 필요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장의 얘기를 들을 생각이 없고 제안되는 해결책이 교육과 별다른 연관이 없다는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EBS 문제를 풀었을 때 무엇을 얻어갈 수 있는지, EBS 문제를 푸는 것이 수능의 취지와 맞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 교육적인 검토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관료적이고 편의적인 목표로만 교육 현장이 굴러가고 있습니다. 교육이 실종돼 있고, 당사자의 목소리 듣지 않고 있는 그런 상황이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수능은 공정하고 노력이나 능력이 잘 반영된 시험이라고 하는 입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분명히 밝히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수능이라는 현실...
저는 수능제도라든가 정시와 수시의 비율과 같은 문제는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교육 자체에 좀 더 주목하는 시선들이 과거보다 좀 더 힘을 얻어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서 의사를 결정하는 거버넌스가 사실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지금 대학에서 치루는 논술시험, 그리고 학교에서 치르고 있는 논술/서술형 시험들에 대해서 학생들이 객관식 시험과 비교해서 결코 긍정적으로 보지 않거든요. 객관식 시험 같은 경우에는 다 외우지 않아도 어느 정도 주제를 이해하고 있으면 풀 수 있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논술/서술형 시험은 정답 시비를 막기 위해서 더 지엽적이고 기준을 엄격하게 잡다 보니까 오히려 다 외워서 써야 하는 식으로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좀 더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
활동 위주의 수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진로 수업은 그냥 학생들이 자습 시간이거나 거의 자는 시간인 것처럼 전문성이나 현장성이 없다 보니까 학생들 입장에서 거의 호응을 못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택(세부선택), 창체(창의적체험) 등 여러 가지 학교 내에서의 활동도 실질성이라는 것이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서 발표를 한다고 하면 학생들끼리 자기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학생이 발표하고 있으면 나는 자습하고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면, 수학 논문을 찾아가지고 심화 탐구발표를 한다고 했을 때 내용을 잘 모르니까 복사/붙여넣기 한 다음에 대충 발표하기도 합니다. 수학 문제를 풀면 연산력이나 더 얻어갈 수 있는데 활동을 하면 오히려 그조차도 얻어갈 수 없는 열화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단순히 수능 해킹만이 문제가 아니라 입시나 교육판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육의 실종, 교육의 추진력을 잃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비정상적인 접근 자체가 문제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입시 이후에도 삶은 이어진다
학생들한테 말씀을 드리면 결국에는 현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들을 다 겪고 문제를 많이 풀어서 대학에 왔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한 것이고, 무엇을 배운 것인가.’라는 의문에 빠지게 되고 언젠가는 방황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물론 입시에 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입시 이후의 삶 자체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기에는 당면한 상황이 더 가혹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이후에 대해서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겠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삶은 입시가 끝난 이후에도 이어진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입시 자체에만 몰입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 내에서 실질적인 공부를 하고, 좀 더 본질에 닿는 공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첫 번째로 드리고 싶고요. 두 번째로 본인이 입시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입시판에서 그것이 본인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본인이 그 과정에 정말 충실했고 나의 역량 부족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그리고 본인보다 좀 더 좋은 대학에 간 학생들이 본인보다 우월한 역량을 갖고 있어 그렇게 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점에 대해서 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입시 결과에 모멸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내가 특정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기가 원하지 않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실의에 빠져 지내거나 아니면 재수를 도전하거나 그런 학생들이 많은데,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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