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청소년의 진로정체감 찾기

K숲 2024. 12. 22. 08:00

[최충만*청소년심리상담가]

“공부를 왜 하니?”

“엄마 때문에 하죠.”

“엄마 때문에 한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

엄마 잔소리 듣기 싫으니까요”

“야, 우주과학자 되겠다는 녀석이 엄마 때문에 공부하냐? 엄마 때문에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기분 어때?”

“안좋죠!”

“그런 기분이면 공부할 때 공부가 잘돼, 안돼?”

“안돼죠.”

 

“야, 그러면 말이야. 우주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기분 어때?”

“그러면 기분 좋죠.”

“그래? 그런 기분이면 공부할 때 어떨 것 같아?”

“잘될 것 같은데요.”

“야, 그러면 엄마 때문에 공부하지 말고 우주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해.”

 

그러고 나서 한 2, 3주 있다가 시험을 봤거든요. 이 친구가 성적이 어떻게 됐을까요? 잘 나왔겠죠. 평균 92점이 나왔어요. 한 과목 13점 올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 친구는 평균 13점이 오른 거예요.

 

그 사례를 경험을 하면서 두 가지를 알게 됐어요. 첫 번째는 학생들이 진로 목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자기가 공부할 이유로 생각하지 못할 수가 있구나. 그런데 실제로 중고등학생들은 그것을 공부할 이유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더라는 거예요.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로목표가 뚜렷한 학생은 그 진로목표를 공부할 이후랑 연결을 시켰을 때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할 가능성이 높다. 이게 아주 분명하다라는 거죠.

그런 경우는 제가 정말 숱하게 봤는데 제가 어떤 고3 학생을 만났거든요. 고3 올라가는 겨울방학이었는데 이 친구가 성적이 정말 화려했어요. 또 고등학교 1학년 동안에 얼마나 공부를 안 했는지 전 과목이 다 8,9등급이에요. 그런데 저랑 이제 고3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 진로 목표를 찾았단 말이죠. 그러더니 바로 그 다음 주부터 하루 8시간씩 공부를 하는 거예요. 부모님이 깜짝 놀라셨죠. 사실은 저도 놀랐어요. 그 정도로 변할 줄은 예상을 못 했거든요.

 

진로 목표를 찾는다는 것은 학습 동기 부여나 실천같은 부분에 영향을 끼칩니다.

 

진로정체감이 중요

그런데 어떤 부모님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우리 아이는 진로목표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건 왜 그러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가 있겠죠.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동기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라든가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 공부하고 있는가, 어떤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가, 이런 게 다 영향을 끼칠 수가 있잖아요. 진로목표가 있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 진로정체감의 수준이 낮기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로정체감이라는 말은 그렇게 흔하게 들으시는 말은 아닐 거에요. 그런데 ‘정체감’이라고 하면 많이 들어보는 얘기잖아요. 정체성, 정체감. 쉽게 얘기해서 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볼 수가 있잖아요. 그 물음에 대답이 굉장히 다양하게 나올 수가 있어요.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때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 맞다, 부터 시작해서 어떤 가족에 속해 있고 어떤 학교를 다니고 있고, 어떤 종교를 믿고 있고 심지어 나의 정치적 색깔이 진보적이다, 보수적이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을 이용해서 나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잖아요. 그 중에서도 특별히 직업에 대한 정체감, 이게 진로정체감이거든요. 그런데 이 진로 정체감이 특히 청소년기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에요.

‘에릭 에릭슨’이라는 심리학자 이름 들어보신 적이 있을 수 있겠는데요. 발달심리학자, 굉장히 유명한 분이죠. 그런데 이 분이 어떤 이야기를 하셨냐면 ‘청소년기의 가장 중요한 발달과 이것만큼은 이루어야 하는데, 그것은 정체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나아가서 ‘청소년기의 정체감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특히나 중요하고 또 어려운 게 뭐냐 하면 진로 정체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쉽게 얘기하자면 청소년기에 내가 어떤 진로 특성이 있는지를 이해하고 명확하게 진로목표를 찾는다는 게 진짜 중요하고 또 어렵다는 얘기에요.

진로정체감이 높다는 것은

자, 그러면 이 청소년의 진로정체감이 중요하다는 걸 알겠는데, 이 진로정체감이 무엇이고 어떤 상태가 진로정체감이 확립되거나 수준이 높은 상태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궁금증을 갖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부분을 이론적으로 잘 정립한 사람이 에릭슨의 후배 심리학자인 마르시아(Marcia)라는 학자입니다.

마르시아는 진로정체감을 두 가지 요인의 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봤어요. 이 두 가지 요인이 뭐냐하면 ‘진로 탐색’ ‘진로 몰입’이에요. 진로 탐색과 진로 몰입이 둘 다 높은가, 어느 한쪽만 높은가, 혹은 둘 다 낮은가 이런 것에 따라서 4가지의 진로정체감 수준 내지는 진로정체감 발달지위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그럼 진로탐색은 뭐고 진로몰입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진로 탐색이라는 것은 일단 나 자신에 대한 탐색, 그리고 직업세계에 대한 탐색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에요. 그러니까 진로를 탐색한다는 것은 내가 도대체 어떤 직업적인 흥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능력이 있고 또 어떤 직업적인 가치를 추구하는가 하는 자기성찰의 과정을 담고 있는 거고요.

그리고 그와 함께 세상에 도대체 어떤 직업들이 있고 그 중에서 내가 마음에 드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고 그리고 그것들은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이며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이 [직업탐색]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탐색과 직업세계에 대한 탐색이 모두 잘 이루어진다. 그러면 진로 탐색의 수준이 높은 것이다, 이렇게 설명이 된다는 거예요.

그 다음 [진로 몰입[]은 간단해요. 내가 어떤 직업적인 목표를 딱 정하고 결정한 다음 거기에 전념하고 몰입하고 준비하는 상태. 그게 진로몰입의 수준이 높은 상태입니다.

 

1. 성취 지위

그래서 진로 정체감의 수준이 높다, 내지는 진로정체감을 확립했다 혹은 성취했다라고 하려면 진로 탐색과 진로 몰입의 수준이 모두 높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 자신을 잘 이해하고 직업세계를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이런 직업이 마음에 들어요 하는 상태’가 됐을 때 비로소 진로 정체감 수준이 높다라고 할 수 있다는 거죠.

2. 자아유예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그 중3 학생. 그 친구는 진로정체감수준이 높은 그런 학생에 속한다고 볼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렇지가 않다는 말이에요. 일단은 진로 탐색은 하고 있어요. 나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직업세계에 대해서 알리려고 노력하고는 있는데 아직 직업을 못 정한 친구들이 있어요. 이제 이런 친구들을 자아유예의 지위에 있다라고 표현을 해요.

3. 유실지위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이미 진로 목표를 정했는데 알고 보면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직업세계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경우가 있다는 거예요. 좀 이상하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이게 어떤 경우냐면 자기가 이제 막 내가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직업이 있을까 이런 걸 고민한 게 아니라 예를 들면 부모님이나 혹은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들 혹은 친구들이 ‘야, 너는 뭐가 어울릴 것 같아. 너 이거 해보면 어때?’ 이렇게 얘기를 했을 때. ‘아, 그거 괜찮네.’ 그래서 덥석 받아버리는 그런 경우거든요. 이런 경우는 ‘유실지위의 상태’라고 이야기를 해요.

4. 자아혼미

그리고 이제 마지막은 ‘혼미 지위 상태’인데 진로 탐색수준도 낮고, 진로 몰입 수준으로 낮습니다. 그야말로 방향성을 못 찾고 혼란스러운 상태다라고 볼 수 있겠죠.

 

자, 그러면 우리는 아무래도 이제 청소년들이 성취지위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잖아요.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정말 많은 학생은 성취지위에 이르지 못하고 유예 혹은 유실, 혼미 지위에 머물러 있어요.

 

진로를 잘 찾으려면

제가 이제 학생들을 만나보니까 학생들이 진로를 잘 못 찾는 몇 가지 이유가 있더라고요. 일단 무엇보다도 탐색이 안되고 있는 거에요. 탐색이 안된다는 것은 자기가 어떤 직업적인 흥미나 역량, 가치가 있는가를 못 찾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 직업세계를 잘 모른다는 거거든요.

그러면 이런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사실 학생들한테 “야, 너 뭐 좋아하냐?” 이렇게 묻잖아요. 그럼 남자애들 같으면 거의 대부분 게임 아니면 운동 좋아한다고 해요. 그런데 게임 좋아한다고 프로게이머 되는 거 아니고 운동 좋아한다고 운동선수되는 거 아닌데. 그러니까 ‘그 다음에 다른 거 좋아하는 거 모르겠는데...’ 이러니까 난감해지는 거란 말이죠.

 

그럴 때 자기가 어떤 종류의 활동을 좋아하는가 찾아보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어요. 검사를 활용하는 거예요. 학교에서 이러저러한 진로검사를 많이 하긴 하잖아요. 그런데 검사가 제대로 활용되는 경우가 너무 없어요. 안타깝게도 검사를 할 때 학생들은 결과만 딱 봐요. 그리고 결과를 보면 무슨 유형, 무슨 유형 이런 게 나오잖아요. 그럼 거기에도 관심이 없어요. 오로지 ‘추천 직업’만 봐요. 그런데 추천 직업은 그야말로 극히 일부의 직업에 불과하잖아요. 거기에 자기가 마음에 드는 게 없을 가능성이 높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 뭐야, 이거 아무 의미 없잖아.’ 이런 식으로 돼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검사를 하는 과정에 어떤 질문이 나오냐면 [당신은 다음에 나오는 활동들 중에 어떤 게 좋고 어떤 게 싫어요?] 이런 걸 물어요. 그럼 거기에 다양한 활동들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거를 찬찬하게 생각을 해보면 '아, 내가 그러고 이걸 이런 걸 좋아하네 이런 건 싫은데 이게 내가 자신이 있구나, 이런 건 자신 없어' 이런 것들이 눈에 보인다는 거에요. 그거를 찬찬히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거예요. 그것을 통해서 ‘아, 내가 미처 생각을 못했지만 이런 걸 내가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알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직업세계를 탐색할 때 검사 결과지에 나와있는 추천 직업만 볼 게 아니라 워크넷, 커리어넷같은 이런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직업 목록이 많이 나오거든요. 전반적으로 둘러보다보면 마음에 드는 것들이 있어요. 그것들을 골라놓고 이게 과연 어떤 직업인지 탐색을 하다 보면 진짜로 마음에 드는 것을 찾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거든요.

 

청소년들이 진로를 못 찾는더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가 또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없다는 거예요. 첫째, 성적 때문에 마음에 드는 직업을 배제해 버리는 거예요. 사실은 막연하게라도 이런 일을 해보고 싶거나 마음에 드는 직업이 있어요. 그런데 자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는 것. 둘째, 능력에 대한 자신이 없는 거예요. 자기 검열을 해가면서 배제를 해 버리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남는게 뭐가 있겠어요? 남는 것들 가운데서는 진짜로 내가 매력을 느끼고 좋아할 만한 게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꿈을 찾기가 어려운 거거든요.

 

중고등학생들이 진로를 찾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게 가능성을 처음부터 너무 따지면 안 돼요. 물론 그렇다고 현실 가능성이라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런데 처음에 진로탐색을 하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너무 가능성을 따지잖아요. 그러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어요. 일단은 가능성보다는 욕구에 초점을 맞추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보고, 그것이 나의 특성과 얼마나 맞는가, 내가 이것을 왜 좋아하는가, 이게 정말로 나와 어느 정도 맞겠는가, 이런 것을 충분히 따져본 다음에 현실 가능성을 따져보는 겁니다. 그러면 ‘그래도 한번 도전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아져요. 그리고 실제로 도전해서 이룰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가능성보다는 욕구를 따져라.”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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