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신*소설가]
소중한 것은 잘 모른다
사람이 살면서 겪어 보면 뭔가를 알게 텐데, 사실 지나고 보면 다 잊어버리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저도 어디 가서 잘난 척하고 세상 사는 법을 ‘이렇게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말은 잘하는데, 하룻밤 자고 나면 저도 잊습니다. 그것이 [인생사]라고 생각했고요.
우리 성현들이 겪어 본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의 지혜를 남겨요. 우리가 그걸 겪으면서 ‘아, 이래서 이런 지혜가 이 세상에 나타났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살면서 그걸 늘 지키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굶주림이 얼마나 절박한가를 알고 밥이나 빵이나 비상식량이 생기는 순간 그게 하늘이라고 인식을 합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식량이 풍부해지고 먹을 게 많아지면 밥이 하늘이라는 걸 모르거든요. 그냥 사는 분들은 죽음이 닥치면 그냥 뭐 유서를 쓰거나 유언을 하거나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죽음이 닥치면 유서, 유언이 안 됩니다.
향기나고 맛깔나게 사는 법
코로나로 음압실, 중환자실, 일반 병실 이렇게 20여 일의 고생을 해 보니까 제가 거짓말쟁이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이겁니다. 그 음압실에서 정말 저는 살아서 천사를 만났거든요. 그런데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난 다음 날 보니까 천사가 아니고 의사와 간호사더라고요. 그렇게 이 사람이 잘 변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의 주인인 것을 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게 남에게 보탬이 되게, 그리고 세상에 무엇인가 이로운 일을 내가 하고 가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물을 마실 때 물에 맛이 있으면 지겨워서 못 마십니다. 물은 맛이 없기 때문에 평생 맘 놓고 마시거든요. 만약 공기에서 향기가 나면 지겨워서 숨을 못쉽니다. 공기의 향기가 없기 때문에 평생 마실 수가 있죠.
그런데 사람은 한정된 수명 때문에 맛깔스럽고 향기 나게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맛깔나고 향기 나게 살 것인가를 보면 결국 나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안 되고, 살아있는 동안 남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내가 태어났을 때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가는 그런 역할을 하면서 살아야만 죽을 때 후회를 덜 하게 됩니다. 죽을 때 후회를 안 할 수는 없어요. 누구나 다 후회를 합니다. 그러니까 ‘그때 해야 했는데 왜 내가 하지 않았을까?’ 이 후회 하나만 합니다. 이런 아쉬움을 담지 않으려면 안 담을 수는 없지만 덜 담으려면 결국 인생을 향기롭고 맛깔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은 희열, 고난과 슬픔, 좌절, 근심 걱정... 이런 것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겠죠. 이게 만약 없다면 이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죽은 사람입니다. 이것을 억지로 버리려고 하면은 버려지지 않고 더 커집니다. 주어진 것을 잘 살살 달래서 데리고 가는 사람, 그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제가 이렇게 물어볼 때가 있어요. “행복은 어디에 있죠?” 그러면 다들 내 마음이 있대요. 그런데 묻지 않으면 전부 마음 밖에 있거나 남이 가지고 있습니다. 남과의 비교법 때문에 한국인의 행복도가 굉장히 낮아요. 그럼 무엇과 비교를 하느냐 하면 인물, 학력, 집안, 벌이, 아파트 등 별걸 다 비교를 해요. 심지어는 키 크고 날씬한 사람을 보면 부럽고 질투와 시샘이 자기도 모르게 생겨요. 그러면 이 사람은 행복할까요?
여러분, 지금 미운 사람 한 번 떠올려보세요. 미운 사람이 벼락 맞아 죽던가요? 잘 먹고 잘 살아요. 내가 죽어요. 스스로 내 몸속의 암세포 이런 것들을 만든 것이죠. 만약에 내가 미운 사람이 내가 미워했더니 벼락 맞아 죽는다, 그러면 한 번 해보세요. 그 사람이 진짜 죽으면 사람이 아니고 하느님급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면 내가 평생 그 사람의 노예로 사는 겁니다. 그리고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는 게 아니고 마음의 주름살까지 생겨요. 그걸 털어버리고 사랑하지는 마세요. 그걸 사랑할 정도가 되면 그건 성인입니다. 포기하고 잊어버리면 내가 편안합니다.
이집트 교훈에 사람이 다 살고 하늘로 올라가 천당과 지옥을 결정할 때 딱 두 마디밖에 안 묻는데요. ‘살아있는 동안 기뻤냐. 남도 기쁘게 했냐.’ 둘 다 그렇다면 천당, 둘 중의 하나라도 아니면 지옥이랍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갈 것 같습니까? 이 교훈대로라면 저도 지옥에 갑니다. 내가 기뻐해야 남을 기뻐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가슴이 아프고 근심걱정이 많으면 웃을 수도 없고, 마음을 웅크리고 있어서 남을 기쁘게 할 수가 없거든요. 말은 쉬운데 쉽지는 않습니다.
행복하려면 '자유인'이 될 것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절반은 만성적 울분에 차 있다고 합니다. 왜 [만성적 울분]이냐면 세상을 볼 때 화가 나는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옛날에는 화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과학 기술의 발전 때문에 이렇게 화나고 짜증 나는 일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시장에 가야만 물가가 오르는 걸 알았는데 지금은 뉴스만 봐도 물가가 오른 게 보이거든요. 그러면 시장에 가기 전부터 화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만성적 울분이 풀리기 위해서는 위로할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우주 역사상 가장 존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자유인이 돼요. 그래서 행복하려면 첫째가 괴로움이 없는 사람, 둘째가 자유로운 사람, 셋째가 건강한 사람입니다.
자유로운 사람을 한 번 생각해보죠. 동물의 70%는 평균 수명대로 못삽니다. 과학적으로 입증이 됐거든요. 그럼 왜 못 사느냐. 짐작하시겠죠?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큰 동물원에서 실험했어요. 갇혀 있던 동물들을 풀어주면 원래 자연에서 살던 동물들보다 훨씬 건강하게 오래 살아요. 이유가 뭐냐면 갇혀 있다 풀려났기 때문이에요. 우리도 자유인이 되려면 갇혀 있는 것으로부터 풀어나가야 해요. 내가 늘 비교하는 것들 있지 않습니까? 학력, 인물, 집안, 돈은 통장, 자동차 뭐 이런 것들 있죠. 비교하고 있으면 그것의 노예로 사는 거예요. 그러면 자유인이 될 수가 없죠.
자, 제가 여러분에게 꽃을 한 다발 드렸어요. 그럼 이거 버릴까요? 좋아할까요? 누구나 다 가져갑니다. 그런데 만약에 꽃다발이 아니고 며칠 썩은 음식물쓰레기, 그 비닐봉지 한 봉지를 내가 드렸어요. 이 쓰레기를 받았다면 버릴까요, 가져갈까요? 누구라도 버립니다. 그러면 육신의 쓰레기는 그렇게 잘 버리면서, 왜 생각의 쓰레기는 안 버리고 가지고 있을까요? 생각의 쓰레기는 쓸 데가 너무 많습니다. 암세포 만드는데 가장 탁월하고, 나를 슬프게 하고 화나게 하고 짜증 나게 하고, 근심걱정을 만드는 원자재가 [생각의 쓰레기]입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이 현장에 오기 위해 계속 늦지 않으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휴대폰을 가지고 시간을 계속 잽니다. 늦을까 봐 약간 속도위반도 하면서 와요. 그때 짜증이 납니다. 그리고 주차장이 옛날 건물이라 조금 좁아요. 주차할 때 신경이 많이 쓰여요. 그럼 또 짜증이 나거든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냐면 ‘어, 그렇지. 내가 짜증 나면 나만 손해지. 주차장 크기에 대한 노예가 되는 거지.’ 그렇게 편안하게 마음을 내려놓으니까 표정이 좋아지는 거예요. 그런 의미를 생각해 보셔야 해요. 괴로움이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괴로움을 빨리 누를 수가 있어요.
인생은 정답이 없지만 명답은 있다
중년만 넘어가면 대한민국은 모두 장편소설 소설가입니다. 놀지 못했죠. 노는 법을 배운 적도 없죠. 공부하느라고 직장생활 돈 버느라고, 집 장만하느라고, 아이 키우느라…. 또 경쟁이 너무 심해서 어느 조직이나 집단, 친구들 사이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애타게 산 세월이 너무 길어요. 인생은 정답이 없습니다. [인생은 정답이 없고 명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인생의 명답은 딱 한 번밖에 못 살고 이게 마지막이기 때문에 잘 놀다 가지 않으면 불법입니다.
여러분, 초침이 있는 시계를 놓고 양치질 한 번 해보세요. 3분 무지하게 길어요. 3분 힘듭니다. 하지만 양치질은 건강을 위해 꼭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 해도 그만인 노래방에 가서 노래 한 번 해보세요. 한 시간이 짧아서 연장하고 연장해요. 노래방은 재미가 있고, 양치질은 재미가 없기 때문에 그래요.
이 얘기를 빌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야 해요.’ 인생을 재미있게 산다는 게 꼭 노래하고 춤추고 이런 게 아니에요. 나에게 주어진 걸 가지고 즐기는 것. 인생도 창조적 융합과 조합을 한다는 것은 내가 창의적 인간으로 살아줘야 합니다. 내가 자유인이 되면 창의적 인간으로 나를 바꿀 수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가치관 중 하나인 "티쿤 올람" (Tikkun Olam)이 무엇이냐면 내가 태어났을 때보다 살아있는 동안 좋은 세상을 만들고 가자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가르쳐요. 비슷한 선상으로 우리의 민족 정신에는 ‘홍익인간’이 있습니다. ‘홍익인간’이라는 게 내가 살아있는 동안 보탬이 되는 이로운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본다면 스스로 창의적인 인간이 되는 것은 우리 민족 DNA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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