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익*EBS수능영어강사]
“스마트폰 버릴 수 있나요?”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 공부 잘하고 싶어요? 그러면 공부를 위해서 스마트폰을 버릴 수 있나요?” 약 200명의 학생이 대상으로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적막해집니다. 분위기 굉장히 이상해집니다. 그런데 이게 참 이상한 겁니다. 우리 세대는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사주고 쓰도록 해주면서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게 참 힘든 일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당연한 일들에 대해서 당연하지 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스마트폰을 많이 쓰는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느냐, 전국적으로 있긴 있겠죠. 하지만 확률적으로 상당히 낮을 겁니다.
수능 영어 1등급의 비율이 상위 2%입니다. 그 상위 2%의 모습을 상상해봅시다.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겠습니까? 내 주변에 없거나 내가 못 봤을 뿐이지 전국 2%는 얼마나 지독하게 공부를 하고 있겠어요? 실제로 명문대라고 불리는 곳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엽기적일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거든요. 그런데 스마트폰에 쩔쩔매는 아이가 그 수준에 갈 수 있느냐. 확률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만나면 반드시 이 이야기를 하거든요. 왜냐하면 그들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도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다? 아니요. 사실 그 아이들은 잘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부를 정말 잘하고 싶다면 지금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들인 게임, SNS라든지 휴대폰을 참을 수가 있어야만 합니다. 목표가 확실하면 이 정도의 고통은 참을 수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올림픽을 준비해요. 금메달을 목표로, 세계 1등을 목표로 훈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확실한 게 있죠. 고통스러운 훈련을 거칩니다. 기름진 거 먹지 못하고 계속 고통스럽게 훈련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금메달은 누가 답니까? 제일 고통스럽게 훈련한 사람이 달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보디 프로필을 찍고 싶어 하는 어떤 직장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운동 진짜 열심히 할 겁니다. 맛있는 게 있어도 고칼로리 음식을 먹지 않을 겁니다. 왜요? 목표가 확실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목표가 확실하면 그만한 고통을 참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공부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 휴대폰이나 게임을 참는다는 것이 잘 안 되잖아요. 이 얘기는 뭐냐면요. ‘공부를 그렇게까지 잘하고 싶지 않다’라는 겁니다. 얼핏 들으면 아이 들은 이 이야기를 이해를 못 해요. ‘뭐라는 거야~’ 뭐 이런 반응이거든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국의 누군가는 목표가 확실하기 때문에 고통을 참고 있습니다. 덜 자고, 덜 먹고, 핸드폰 안 쓰고 친구들과 좀 덜 어울리고 공부를 하고 있다고요. 그럼 그 친구가 전국에서 1~2%를 가지고 갈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공부가 애매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다시 질문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공부를 위해서 스마트폰을 버릴 수가 있나요?” 당장 자연스러운 답은 [당연히 못 버린다]입니다. 너무 자연스러운 겁니다.
하지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어, 그러네. 내가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핸드폰, 이거를 못 버리네. 그럼 난 공부를 잘하고 싶은 게 아니구나.” 저 같은 경우에도 살을 빼겠다고 평생을 다짐하지만, 어제 새벽 한 시에 또 과자를 먹었습니다. 온종일 참았는데 결국 새벽에 뜯어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죠. 괜히 늦게 먹었습니다. 그럼 저는 정말 살 빼고 싶은 거 맞아요? 정말 몸짱 되고 싶은 거 맞아요? 인정해야죠. 아닌 거예요. 정말 명확한 목표가 있어서 정말 건강과 몸짱을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이 저는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먹고 싶은 것 먹는 겁니다. 아이들도 인지해야만 합니다. 지금 내가 게임을 즐기고 스마트폰을 한다라는 게 공부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를 반드시 인지해야만 합니다.
진짜 공부 vs 가짜 공부
아이들은 고민해야만 합니다. 막연하게 주어진 숙제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나는 왜 공부하는가?] 이 묵직한 질문에 답을 해야만 합니다. 나의 목적이 확실해야 거기에 수반되는 고통을 참을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조금만 공부가 어려워지고 고통스러워지면 금방 그만두게 됩니다. 그게 빠르면 초등 고학년, 늦어도 중학교 2학년 때는 오거든요. 왜 공부가 어렵다는 것은 힘들다는 소리예요. 고통스럽단 소립니다. 놀지 못하고 공부량이 늘어난다는 소립니다. 그것을 못 참아요. 아이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참 기분 나쁘게 들을 수도 있지만 못 참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점점 공부에 멀어지는 아이들이 30~50% 이상 분포가 되어있다는 겁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를 아무도 얘기를 안 해주고 있습니다. 같이 논의를 안 하고 있습니다. 왜요? 그냥 주어진 커리큘럼을 이거 하고 저거 해야 한다고만 얘기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되지 않습니다. 잘 되고 있다면 중학교 성적이 그렇게 분포가 나올 수가 없거든요. 진짜 공부는 자기의 뜻대로 목적을 가지고 건강하게 공부하는 겁니다. 이거는 결과를 떠나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공부하기 바라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우리 부모 세대들의 교육열 때문에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스스로 공부를 생각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아이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어떻게 내가 공부해야 하는지, 왜 이 공부를 잘해야 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이 고통을 참을 것인가, 이런 그것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지 못하고 굉장히 막연한 과정들을 통해서 공부하고 있거든요.
대한민국에서 입시의 성공을 위해서 기본적으로 재능과 노력, 선행으로 구성이 된다고 합니다. 공식을 제시해본다면 ‘(재능 x 노력)+선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아이가 노력이 0이 되면은 이 공식은 완전히 망가지게 되는 겁니다. 재능이나 선행이 교육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하지만 노력을 안 해 버리면 결국 빠르면 초등 고학년, 늦어도 중학교 때 공부가 멈춰버리거든요. 노력은 뭘 말하는 겁니까? 내가 어느 정도 고통을 참으면서 공부하는 겁니다. 그런 준비를 아이들에게 시켜줘야 합니다.
가짜 공부라고 이름 붙이기도 참 슬프게 아이들이 참 힘들게 공부를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부의 목적을 고민할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그냥 ‘너 초2니까 해야 해. 초3이니까 뭐 해야 해. 초등 고학년 영문법 해야 해.’ 이런 식으로 그냥 시키는 공부만 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시험 기간에만 공부하고 나머지 때 놀죠. 근데 자기도 알아요. 그렇게까지 자기가 열심히 안 한다라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습니다. 대신에 힘들죠. 이걸 왜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공부가 딱 힘들어지는 순간에 고통스럽다고 생각을 합니다. 인간은 그 고통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게임이나 핸드폰을 더 멈추지를 못하게 되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공부는 내내 시켜서 하는 거라는 인식이 강하거든요.
입시는 결국 상대평가입니다. 상대적으로 진짜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단 말입니다. 이 친구들의 가장 큰 출발점의 차이는 공부하는 목적을 알고 있어요. 그걸 찾아가고 있는 겁니다. 주로 진로죠. 자기의 진로에 대해서 관심도 있고 확신도 있습니다. 목표가 확실하니까 게임이나 핸드폰을 통제할 수도 있고요. 이 친구들 내내 공부합니다. 시험 기간 외에도 계속 공부하고요. 열정을 가지고 노력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몰입’의 단계까지 들어가 버리면 자기가 원해서 공부를 많이 하면서 탁월한 경지를 가버리면 이 친구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 친구들은 ‘공부는 힘들어도 내가 하는 거다.’ 자기가 원해서 무언가를 한다라는 것은 힘들지만 괜찮은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진짜 공부를 하는 친구들은 남들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면서도 보람이 있다라는 생각으로 충족감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러면 더더욱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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