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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조용한 위로, 명화

K숲 2022. 11. 14. 10:00

[태지원*글쓰고 책쓰는 사람, 사회교사]

 

조용한 위로, 명화
조용한 위로, 명화

오래전 살았던 천재 화가들의 작품, 명화교양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지만, 자세들여다보면 이 안에 화가들의 삶과 고민, 그가 살았던 시대 배경, 시대 문제 같은 것들이 총망라하여 담겨 있어 큰 재미를 주기도 합니.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한 장의 그림을 보며 인생에서 마주치는 여러 문제의 답을 얻기도 하는데요.

저의 경우 일이 안 풀릴 때마다 게는 언제 좋은 운이 오지? 다른 사람은 인생 대박인 것 같은데 나는 왜 잘 풀리는 일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운세, 사주, 대운 등을 찾아보기도 하다가 그림을 보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모으라(1909)>는 작품은 젊고 아름다운 두 여성이 탐스럽게 피어있

는 장미 봉우리를 부지런히 모으고 있는 그림입니다.

다음은 17세기 영국 시인 로버트 해릭의 <소녀들에의 충고>라는 시의 일부인데요.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모으라.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오늘의 미소 짓는 이 장미도

내일은 지고 있으리니.

 

지금 탐스럽게 피어있는 장미가 내일이면 지고 없어질지 모르는 것처럼,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두 여성도 내일의 운명을 알 수 없으니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잡아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카르페 디 호라티우스의 에서 엿보이는데요.

오늘을 붙잡게.

가급적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으면서

 

이것은 혹시 시간과 돈을 낭비하면서 내일을 생각하지 말고 흥청망청 최대한 오늘을 즐기라는 의미일까요?

사실 호라티우스는 육체적인 쾌락 같은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쾌락이 아니라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소박한 삶의 자세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인데요, 가령 산책할 때 주변 나무의 초록빛과 길가에 핀 꽃의 아름다운 빛깔 등을 충분히 즐기고 하늘의 파란 빛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가 계속 불안하고 헛된 기대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질 때 이런 기대와 불안을 잠시 접어두고 오늘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감정과 경험에 좀 더 집중해보면 어떨까요?

 

그림 감상
미술관

 

말 못 할 고민에 괴로워질 때,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고 속사정을 말할 만한 적당한 친구가 없을 때, 주변에 가까운 사람이 없는 듯한 외로움에 시달릴 때, 내가 좀 비정상인가?’, 특이한 고민에 나만 괴로워하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이런 고민에 휩싸일 때마다 폴 고갱의 작품을 봅니다.

고갱은 35세까지 증권회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전업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회사를 나와 타히티섬에서 2년 동안 원주민들의 삶을 그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파리로 돌아와 개인전을 열지만, 흥행에 참패했습니다. 개인의 호평도 상업적인 성공을 이뤄내지 못하고 가족들에게도 외면받는 신세가 되는데요. 절망에 빠져 다시 타히티의 섬으로 돌아온 고갱은 집에서 한 달여 간 틀어박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를 그리게 됩니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인간의 탄생을 의미하고 부지런히 과일을 따고 있는 청년은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의미하죠. 그리고 얼굴을 감싸 안주저앉아 있는 노인죽음을 앞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고갱이 굉장히 괴로운 시기에 이 그림을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자살시도를 했기 때문에 유언과도 같이 남긴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우리가 작품의 제목이 의미하는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는 않죠.

왜냐하면, 우리는 삶의 중간과정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작품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인간이 각각 다 달라 보이지만 보편적인 인생행로에 예외는 없겠구나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비슷한 삶의 행로를 걸을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고갱이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외로움이나 무력감, 소외감 같은 감정들도 어느 정도 그림에 드러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 감상

 

우리는 보통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겪으며 살아갈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더 큰 괴로움에 빠질 때가 많은데요.

그런데 사실 부정적 감정이나 고민 역시 비정상의 영역 또는 어떤 특이한 영역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것이죠.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비슷한 인생행로를 걷고 있고 거기에 특별히 비정상이라 부를 수 있는 영역은 많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자신감 넘치는 시기, 하고 있던 일을 쭉 이어가는 시기가 다 지나갔을 때가 옵니다. 예를 들면 직업을 계속 이어가다 은퇴하거나 아이를 키우는 데 몰두했는데 아이들이 독립하고 떠난 시기, 경력을 좀 이어갈 줄 알았는데 경력이 단절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면 예전에 가졌던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죠.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지?”

예전에 가지지 않았던 정체성 혼란과 함께 화려했던 시기를 그리워하면서 오히려 더 큰 괴로움에 빠지게 되죠.

그때 저는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1839)라는 그림을 봅니다.

테메레르 호는 영국과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가 벌였던 트라팔가 해전에서 크게 활약했던 유명한 함선이지만 이렇게 위용을 뽐내던 배도 마지막을 맞게 됩니다. 산업 혁명으로 증기선이 발명되면서 지금까지 돛대를 이용해 움직이던 범선이 불필요해졌으니까요.

 

이 작품은 2012년 개봉한 제임스 본드 시리즈 영화 <스카이폴>에 등장하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한때 최고의 첩보원이었지만 이제 노쇠한 인물인 제임스 본드 한때 위용을 뽐내며 영국을 승리로 이끌었던 전함이었지만 이제는 증기선에 끌려가는 신세가 된 태매레르호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지죠.

이때 떠오르는 생각,

해체가 반드시 끝을 의미할까?

한 시기의 끝은 다른 시기의 시작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테메레르 호의 경우 나무가 주재료이기 때문에 해체 후 다른 건축물의 재료나 땔감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겠죠. 그런데 그것이 반드시 끝일까?

해체된다는 것은 사실 다른 정체성을 얻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은퇴나 아이들의 독립 후 삶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때도 있는데요, 즐거운 일이나 몰두해야 할 일이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어떤 시점에 와 있는지고민할 때야말로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이때 새로운 분야를 접해보거나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거나 배우고 싶은 분야에 도전해 보는 시기로 만들어 갈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인생의 새로운 시선, 명화 보기로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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