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집에 돌아갈 때 마음이 편하신가요?
가족 간 갈등이 있다면 귀가하는 발걸음이 무겁고, 이런 상태가 개선 없이 오래 지속되면 정신과적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아무리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해도 집에 돌아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외부의 어려움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위안이 되는 안식처여야 함에도 때로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 가족, 그 가족의 구성원인 우리는 왜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 모두 각자 맡은 가족의 역할이 있습니다.
저는 집에 가면 아버지, 남편, 아들의 역할로 최선을 다하지만, 때때로 갈등과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각자의 역할을 열심히 해나가도 가족 관계가 늘 좋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누구나 가족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데요,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고 해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족 간 적절한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나무랄 데 없이 화목한 가정의 사람들도 외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이런 감정이 지속되면 나이 들어 황혼 이혼이나 졸혼을 택하게 됩니다. 경제적인 준비도 없는 경우의 황혼 이혼은 자식들의 부담만 가중시키지만, 부부갈등이 너무 심해지기 때문에 결국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됩니다.
이혼의 법적 절차가 복잡하고 남의 시선도 불편하다는 사람은 졸혼하기도 하죠. 졸혼은 “결혼을 졸업하다”라는 뜻으로,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 출판한 <졸혼 시대>라는 책에서 처음 나온 말로, 법적으로는 부부관계를 유지하지만, 실제의 생활은 각각 따로 하는 형태의 삶을 의미합니다.
졸혼하든, 이혼하든,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갈등을 누르며 부부가 함께 살아가든 결국에는 외로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삶의 형태를 선택하든 외로움이 필수로 동반된다면 젊을 때부터 부부가 서로를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보면 어떨까요?
1930년대부터 하버드대에서 인간의 행복에 관한 종단연구를 하여,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나오고 대상을 살아가는 것에서 나온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돈이나 명예, 지위보다는 인간관계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인간이 느끼는 행복감의 원천이라는 뜻으로, 가족과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가족 환경이 바뀔 때마다 유연한 대처를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이혼이나 졸혼 등의 불행한 가정생활로 이어질 수밖에 없겠죠.
남편은 가정을 꾸리며 심리적인 기대감으로 헌신적이고 따뜻한 어머니상을 아내에게 투사하고 그 역할을 기대하면서 요구가 많아지게 되는데, 이것이 부부갈등을 심화하고 다음과 같은 어려움이 하나둘씩 생기게 하죠.
첫 번째, 남편의 정서적인 독립이 어려워집니다.
결혼하면 원 가족에서 독립하여 자신이 만든 가족 안에서 아버지, 남편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부인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맡겨버리면 남편의 정서적인 독립이 불가능해져 아내의 심적 고충이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부부 사이가 나빠집니다. 그러면서 부인이 자녀에게만 지나친 애정을 쏟게 되어 남편이 고립되는 가족의 이원화 양상을 보이게 되죠.
이처럼 남편이 본인의 역할을 잊고 부인에게 어머니상을 투사하면, 자신의 정서적인 문제와 함께 부인과는 갈등이 심화되고, 자녀는 자립심이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두 번째, 자식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는 마음은 자녀의 건강한 성장을 저해합니다.
자녀가 어릴 때는 서로 관계가 좋았더라도,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갈등이 증폭되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가 자녀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태도가 가장 큰 이유가 되죠.
양가감정은 1910년 스위스 정신의학자 오이겐 블로일러가 만든 개념으로 어떤 특정 대상이나 사람에 대한 대립되고 모순된 감정을 의미하는데, 자녀는 부모를 보며 이러한 양가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감정이란 것은 여러 색이 섞여 있는 복잡한 덩어리이기 때문에 한가지 감정이 같은 상태로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부모를 좋아하는 감정 역시 나쁜 감정으로 쉽게 바뀔 수 있죠.
자녀가 부모에게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듯 부모도 자녀에게 양가감정이 있으므로 부모와 자녀 모두 그러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좋은 가족 관계를 위해서는 대화의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부분도 중요한데요, 이것은 소통과 공감이 전제되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한 무의식적인 기대가 가족 간의 갈등을 유발하기도 하는데요, 어떤 어머니는 자녀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 편하게 해주고 싶다면서도 자녀의 진학이나 진로문제에서는 자기의 의견을 많이 개입시킵니다.
자녀가 어떤 삶의 목표나 태도를 가졌는지도 알아야 하지만, ‘가족과 자녀에 대한 나의 기대는 무엇일까?’라는 것들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죠. 그러면 나의 기대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고 그 기대를 낮추려고 노력하여 가족과 더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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