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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영재로 키우는 부모의 태도

K숲 2024. 7. 11. 08:00

[유정임*작가]

영재는 어떤 아이들일까?

영재는 어떤 아이들일까요? 천재는 타고난다고 생각하지만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은 영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영재를 공부 잘해서 시험 점수 잘 받고, 1등부터 100등까지 순서를 매겨서 판단하는데요, 우리가 생각하는 국영수사과의 학습이 아니라면 어떤 아이는 노래의 영재성을 가지고 있고, 댄스 영재성을 가지고 있고, 요리에 영재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보지 않으려고 하니까 그 아이들의 영재성은 학습에 묻혀서 발현되지도 못하고, 뭔가 드러내려고 하면 부모님께 야단을 맞죠. “왜 자꾸 딴짓을 해? 공부를 해야지” 그 딴짓은 그 아이의 세계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1등도 꼴등도 아닌 애매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는 이 세상의 어떤 존재일까”를 반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재의 엄마가 가진 공통점

그때 제가 만난 수많은 영재 어머님들은 놀라운 공통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 공통점을 우리 아이들에게 한 번 적용을 해 볼까하는 자세가 있는데요. 제가 흔히 얘기하는 세 가지의 자세입니다.

첫 번째는 극성.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지나치죠? 아주 싫어요. 두 번째는 열성. 왠지 좀 나은데 뜨겁습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정성. 굉장히 다르죠. 정성은 인내와 참된 마음과 성실함이 가미가 됩니다.

“엄마, 나 수학 공부를 해볼까?”

그런데 그 다음날 수학 문제지가 30권이 쌓여 있다면 아이가 공부하고 싶어할까요? 그건 ‘극성’에 해당되겠죠.

'열성'은 “그래서 엄마가 어떤 걸 사줄까?” 라고 옆에서 자꾸 얘기를 한다면 아이는 그것도 부담스러울지 모르겠습니다.

'정성'은 아이가 원하는 한 두 권을 밀어 놓고 엄마가 공부하는 겁니다. 태도를 그냥 보여주면 “어? 나도 뭘 좀 해?” 라는 모델을 삼을 수 있는 것이 정성의 태도입니다.

 

놀랍게도 제가 만난 영재 엄마들은 정성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엄마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 극성이나 열성은 내 속에 있는 것을 얘기할 수 있어요. 이제와 생각하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 속에 있는 것을 얘기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키우는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아이를 바라보면서 ‘저 아이의 태도에 나를 어떻게 반응할까?’ 스스로 나를 돌아보고 나는 어떤 기질의 사람인가를 돌아보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다 다르듯이 아이가 보여지는 태도는 저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휴식 시간에 “숙제 다 했으면 이제 좀 놀아.” 외향형의 엄마인 제가 생각했을 때는 놀으라고 하면 밖으로 뛰어나가 친구를 만나고 놀이터로 가야 하는데 저의 두 아이는 놀러나가는 형태가 달랐습니다. 한 아이는 나갔는데 한 아이는 방에 들어가 책을 봅니다.

그때 참 이상했습니다. ‘왜 안 나가지? 저러면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친구를 만나야 하는데...’ 그때 제가 또 한 번 느낀 것이 아이의 다른 해답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저 아이는 책을 보며 놀고 있구나. 저 아이는 또 다른 기질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구나.’ 영재 엄마들이 보여준 것은 그 아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재 엄마의 마음 읽어주기

어느 날 한 영재 엄마는 눈을 감고 자고 있는데 등이 너무 축축해서 눈을 떴대요. 아이가 호기심에 정수기의 물을 누른 겁니다. 이 물이 흘러넘쳐서 엄마의 등허리까지 온거죠.

우리의 선택지는? 첫 번째 소리를 지른다. 아이의 등짝을 내려친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조금 다르게 반응하셨습니다. 어차피 벌어진 일. 이 위에서 아이와 댄스를 추며 표면 장력의 원리를 가르치셨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니가 엎지른 거니까 엄마하고 함께 치울까? 이 사안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아이가 생각한 정수기의 원리였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그냥 물을 누른게 아니라 정수기가 궁금했구나라는 걸 읽어주셨던 겁니다.

 

아이가 왜 그랬을까? 행동을 읽지 않으면 아이와 소통할 수 없습니다. 정성이라는 것은 기다리면서 아이가 이런 행동을 했던 것에 대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본다면 내 생각이겠지요. 나를 다시 생각하고, 나를 인내하고, 아이의 생각을 내면화시켜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하는 길. 그것이 엄마의 교육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 쌀밥을 나무판떼기에 들이부어서 문질러 보셨습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저녁에 밥을 하다가 애들이 조용해서 뒤를 탁 보니까 밥 한 그릇을 나무로 된 거실에 들이붓고 두 녀석이 밥알을 하나하나 쫙 뭉개고 밀어서 거실 바닥 절반을 칠해놓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딱 보니 인간적인 심리로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데요. 정성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잖아요.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궁금했을까? 저는 그 때 스스로를 잠재우고 이유가 있었겠지 물었습니다. “밥알이 너무 보드라와요. 엄마, 너무 신기해요.” 이미 벌어진 일. 밥알을 다 문지르고 물감을 풀어 놓고 손바닥 찍어 데칼코마니 그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의 호기심을 다 채웠기 때문에 그 이후에 함께 거실을 잘 치웠습니다.

엄마가 내 마음을 읽어줬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에 아이들은 정성적으로 달려 들어와서 함께 치웁니다. 이게 뭐야? 라고 소리지르는 순간, 아이가 있었던 호기심의 영역은 엄마로 인해 다 무너지고 야단만 듣게 된다면 아이는 그 다음에 뭔가 하지 않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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