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아*방송작가] 인간극장, 병원24시,한국인의밥상 등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음이 임박한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그을 밀쳐놓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아요.
공기 좋고 조용한 곳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전까지의 삶과 분리된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옮기는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요, 저는 최대한 원래 살던 공간 안에서 지내다 보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취재했던 희영 씨도 임종을 앞둔 어머니가 병원에서 주는 진통제만으로 버티는 것은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 끝에 춘천의 리조트급 호스피스로 어머니를 모셔 갔습니다.
삶의 마지막을 좋은 기억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자연과 가깝고 시설 좋은 곳을 찾아간 것이었지만 희영 씨 어머니는 그곳에서 외롭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셨다고 해요. 그래서 그녀는 다시 도시 한복판의 호스피스로 옮기게 되는데요, 그곳에서 어머니는 찾아오는 친구를 만나고, 가족들도 더 자주 볼 수 있게 되어 훨씬 즐겁게 지내셨다고 합니다.
결국, 임종을 앞둔 어머니에게는 공기 좋고 편하고 안락한 낯선 공간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 익숙한 공간 속의 삶이 필요했던 것이죠.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이 임종을 맞게 되었을 때 가장 적절한 공간이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방송인 이효리 씨는 집에서 하고 싶은 것 세 가지로 “집에서 태어나는 것, 집에서 결혼하는 것, 그리고 집에서 죽는 것”을 꼽았는데요, 이미 집에서 태어났고 집에서 결혼했으니 이제 집에서 죽기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지인의 아버지께서 집으로 가고 싶다셔서 집을 병원 특실처럼 꾸며 모셔오려고 하자, 갑자기 어머니가 반대하셨다고 해요. 두 분은 무척 사이가 좋았고 여전히 서로 사랑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네 아버지가 집에 와서 죽는 것은 싫다, 겁나고 무서워. 나 혼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쩌니? 의사나 간호사도 없는 집에서 돌아가시면 내가 어떻게 해? 만약 네 아버지가 늘 함께 자던 침대에서 돌아가시면 장례 끝나고 어떻게 그 방에서 잠을 자겠니?”라고 말씀하시면서요.
그 말을 듣고나서 생각해 보니 같은 공간을 쓰던 어머니에게는 집에서의 임종이 회피할 수 없는 절실한 현실 문제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보다는 본인에게 익숙한 공간인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왔던 저는 이분의 경우를 접하고는 꼭 그렇지만도 않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죠. 전문화된 임종실이 있는 병원이라면 그곳에서 임종을 맞는 것이 이상적일 수 있겠다고 말이죠.
집에서 임종을 맞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만약 집에서 부모님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119를 부르겠죠? 그래서 출동한 구급대원이 문 열고 들어오는데 이미 돌아가셨어요. 구급대원들은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환자를 응급실에 옮기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그대로 철수해 버립니다.
그러면 즉시 파출소로 연계가 되어 파출소에서 경찰과 형사들이 집으로 방문하여 외인사 혹은 타살의 흔적을 확인한 후 검안의를 불러 사인(死因)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는데요, 타살의 의혹이 없다는 결과가 나와야 비로소 장례식장으로 옮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집에서 임종을 맞게 되는 경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참담한 마음을 돌아보고 애도할 여유도 없이 경찰과 형사들에게 상황을 진술하고 검안의에게 비용을 치르는 등 시급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복잡하고 번거로운 과정을 버텨내야 합니다.
저는 취재를 하며 다양한 죽음에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요, 원하면 집에서 죽을 수 있는 사회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면, 죽음의 순간 좀 더 좋은 이별이 가능해져 임종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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