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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임종기 환자의 보호자라면?

K숲 2023. 2. 1. 08:00

[홍영아*방송작가] 인간극장, 병원24시,한국인의밥상 등

 

임종기 환자의 보호자라면?

 

어느 화목한 가정의 아버지가 갑자기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느껴 검사를 받아보니, 10년 전 앓았던 대장암이 재발해 이미 다른 기관들로 전이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말기 암 환자라고 하기에는 다리에만 약간 통증이 있을 뿐 컨디션이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아 사위가 사주는 갈비까지 맛있게 먹은 후 입원했어요.

그런데 주치의가 대장에 암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대장내시경 오더를 내려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대장내시경을 위해서는 장을 비워야 해서 일정량의 시그니처 주스를 마셔야만 하는데요, 이 환자 또한 역한 음료를 마시면서 완전히 기운을 잃고 기진맥진한 상태의 중환자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불과 몇 시간 전 갈비를 뜯고 오신 분인데 말이죠.

 

보호자인 남매는 의사에게 이미 뼈나 폐에도 전이된 상태가 확인되었는데, 꼭 대장내시경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아버지가 지금 너무 괴로워하세요”, 몇 시간 만에 완전히 중환자가 되셨어요

그러자 의사가 챠트를 보면서 “그럼 하지 말까요?”라고 묻습니다.

남매는 동시에 ”네, 중단해 주세요”라고 대답하고요.

어디까지 치료해야 할까?
어디까지 치료해야 할까?

대장까지 암이 있는지 없는지가 지금의 환자에게 그렇게까지 필요한 일이었을까요?

그 남매는 저에게 만약 입원한 부모님이 한두 달 밖에 못 산다는 진단을 받더라도 의사의 처치나 검사에 기계적으로 무조건 선생님만 믿겠습니다라고 반응해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의사를 존중하는 것과 맹신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의사는 이권에 눈이 멀어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리며 극적으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역할이 많고,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져 사실 대부분의 의사가 책임감 있고 성실하며 사명감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망각합니다.

그래서 보호자나 환자로서 의사 앞에 서면 그의 이야기에 긴장하고, 벌벌 떨고, 꼭 그의 말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더 이상의 추가 질문을 하면 의사가 기분 나빠할지도 몰라라는 걱정에 “왜라는 질문을 꾹꾹 눌러 참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지금 이 의사는 책임을 다해 병을 고쳐줄 사람이고, 나의 질문에 성실히 답할 사람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 해요.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사실 하나는 의사도 잘 모른다는 것인데요,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수명이 길어지면서 의사들이 죽음을 이렇게 오래 목격한 때는 아직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명을 다했다 싶으면 구급차에 태워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이제는 별도로 마련된 장례식장에서 상을 치르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아파트라는 좁은 공간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이에 따라 죽음의 퍼포먼스가 여러모로 크게 바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의사는 치료를 목적으로 할 뿐 생명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의사나 나나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일텐데요, 다만 의사는 전문인으로서 의료적 판단을 좀 더 신속하게 내릴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보호자는 의사에게 세심하게 질문하여 여러 경우의 수를 뽑아 가족과 공유하고, 만약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경황없이 떠나보내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의사, 치료하는 것이 목적

 

의사는 치료하는 것을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에 살리는 것, 숨이 붙어 있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두기 마련입니다.

 

의사 :  “보호자님의 어머니가 지금 심장이 멈추셨습니다, CPR 해야 합니다, 동의하시죠?

보호자 : “안 할래요”

의사 : 안한다고요?

보호자 : “엄마 연세도 있고 여러 번 심장이 멎기도 해서 이런 일이 생기면 CPR 안 하기로 했으니까 안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일 때 어떤 의사는 어떻게 저런 자식들이 있나, 부모님을 이렇게 그냥 보낸다고? 이게 말이 되나?”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도 많은데요, 의대에서 치료를 멈추고 임종을 지켜야 하는 상황보다는 무조건 살리고 치료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배워왔기 때문에 료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나타나는 것이죠.

 

이와 관련해 서울대 허대석 교수님이 인상적인 말씀을 하셨는데요.

“치료하는 의사보다 치료를 멈추는 의사가 더 힘든 일을 하는 것이다”

인공 신장, 투석, 항암제 등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리려는 의사보다, 어느 순간이 되었을 때 더는 의미가 없습니다, 더 이상의 처치는 금전적·경제적 부담도 있고 그에 따른 리스크도 크지만 무엇보다 환자가 너무 힘들어 합니다“여기에서 그만 멈추시는 게 좋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의사가 더 힘든 일을 하는 의사라는 의미입니다.

 

치료하는 의사보다 치료를 멈추는 의사가 더 힘든 일을 하는 것
치료하는 의사보다 치료를 멈추는 의사가 더 힘든 일을 하는 것

그런데 대부분의 보호자는 의사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의사가 치료를 포기하지?, 의사가 어떻게 저런 절망적인 말을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아서, 의사로서는 관례대로 끝까지 치료에 임하는 것이 비난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임종기에 있는 환자의 가족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커뮤니케이션 대상자는 사실 의사입니다.

지금 당신이 임종을 앞둔 누군가의 보호자라면 의사에게 이성적으로 귀찮을 정도로 계속 묻고, 항의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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