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는 혐오음식?
여러분은 감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현대인의 입맛을 하나로 길들인 감자튀김. 일명 프랜치 프라이를 비롯해 다양한 요리법으로 세계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감자. 그러나 이 감자가 18세기 유럽인의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굉장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감자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무시무시한 오해와 편견 때문이었는데요.
고구마와 함께 사랑받았던 음식 감자. 감자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자권리선언
안데스 산맥의 땅 밑에 숨어 있던 감자가 유럽으로 건너오고 이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으로 전해졌던 오해와 편견,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장애를 견뎌낸 한 인간으로 인해 세계인의 식탁에 당당하게 오를 수 있었던 감자. 그 순탄치 않았던 '감자 권리선언'은 어떤것일까요?
악마의 음식
유럽인의 눈에 비친 감자는 비호감 그 자체였습니다. 울퉁불퉁 못생긴 데다 실없는 모습은 유럽인에게는 몹시 거슬린 부분이었죠. 땅 밑에서 자란다는 것도 어쩐지 의심에 여지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별다른 노력을 들여도 잘 자란다는 부분은 아직도 미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인들에게 뭔가 악마의 계략과 관계가 있다는 의구심마저 들었답니다.
이 미심쩍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는 소문이 되면서 더 구체화되면서 퍼져나갔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의혹은 그 당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질병 중에 하나인 한센병 즉 흔히 얘기하는 나병을 옮긴다는 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자 재배를 부담스러웠던 남부 유럽에 비해 아일랜드에서는 감자가 널리 퍼져 재배되고 있었는데요, 춥고 습한 기운은 감자 재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들이 감자를 재배한 것은 오랜 굶주림을 극복하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오랜 잉글랜드와의 갈등과 전쟁에 시달린 아이랜드. 질병에 시달리던 아일랜드는 손이 많이 가지 않던 감자가 신의 선물과 같았습니다.
1748년 프랑스 브장송 법원에서는 감자재배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는데요, 이들에게 감자가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 작물인지는 감자의 명칭을 통해서도 알 수도 있었습니다. 계몽주의의 정신이 집약된 백과전서 (디드로와 달랑베르를 편집 책임자로 하여 25년에 걸쳐 총 35권으로 구성된 유럽 18세기 중엽의 지식을 집성)에는 감자의 설명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브넬[1723~1775, 의학, 약학, 화학분야에서 당시 최고 전문가이며, 화학자 라부아지에의 스승]은 방귀가 자주 나오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어울리는 음식으로 귀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서술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서술은 사회적인 편견으로 만들어낸 대표적인 의견이었습니다. 감자를 그저 돼지 먹이로만 이용하고 서민들의 음식이라는 편견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었답니다. 오늘날에도 감자가 고급 음식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당시 퍼져나간 유럽인들의 편견 때문이지 않을까요?
당시 계몽주의에 입각하여 서술된 나름 공신력 있는 백과전서 저자들조차 감자의 원산지는 잘못 파악하고 있었는데요, 북아메리카 버지니아에서 유럽으로 건네져 온 것이라는 서술 되어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정보였습니다. 사실 감자의 원산지는 페루와 칠레의 안데스 산맥 고지대랍니다. 잉카인들이 오늘날인 페루 지역을 점령한 후 기원전 1400년 전후 재배되기 시작했답니다. 백과전서가 감자의 미신적 오해를 불식시키긴 했지만 오류와 편견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네요.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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