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산도는 경남 통영에서 바라보았을 때 미륵도 왼쪽에 위치한 한산면의 주도이자 한려해상공원의 출발점이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592년(선조 25) 조선을 침략한 왜군 함대를 궤멸시켜 한산도대첩을 이끈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한대요, 임진왜란의 역사를 치열하게 간직하고 있는 통영시 한산도 일대는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치르면서 자급자족한 생활의 흔적이 아직까지 지명으로 많이 남아 역사의 발자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칠천량해전으로 조선 수군이 궤멸되자 모든 물품과 건물을 전소시키고 호남으로 후퇴하면서 폐허가 된 운주당은 1739년 통제사 조경이 재건하여 제승당이라고 칭한 이후 오늘날까지 그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대요, 이 제승당에서 멀리 바다 쪽으로 내려다보면 삼각형처럼 생긴 “고동산”이 보입니다.
이 곳은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 산 위로 신호수와 나팔수를 보내 소라와 고동을 불게 하고 나팔로 신호를 전했다는 유래가 있으며 현재에도 여전히 “고동산”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문어포”는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에서 패한 왜구들이 도망을 가며 길을 물어본 곳이라고 해서 “문어포(問語浦)”가 되었다고 하고요.
8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아직도 “내추리”라 부르는 여차마을의 지명은 노를 만드는 곳을 옛날 사투리로 “뇌추리”라고 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독암바우”라고 했던 “독암마을”은 이 일대에서 질그릇, 장독 같은 것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독암”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고요.
이순신 장군이 곳곳에서 일군 군량미를 보관하기 위해 창고를 만들어 저장한 곳이 지금의 “창동(倉洞)”입니다.
알록달록 벽화길과 아기자기한 생활의 모습을 간직한 “야소마을”의 “야소”는 ‘대장간’의 방언인데요, 임진왜란 당시 이 동네에서 병장기, 무기를 생산했다고 전해집니다.
섬의 작은 도로 발길 닿는 곳곳에 자리하여 이어져온 마을을 거닐어 보며 그 이름에 담긴 400여년 전 임진왜란의 역사를 떠올려보고 치열한 격전 이후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백성들의 삶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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