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 * 신경정신과 교수]
정신과에 찾아와 “불안하고 우울해요.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불안의 뿌리, 근원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 번째는 “마음의 상처”입니다.
어린 시절 당한 사고, 성장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사건, 또래 집단에서 주고받는 상처나 따돌림의 경험들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불안의 뿌리와 근원을 이루게 됩니다.
두 번째는 “유전적, 생리적 차이” 때문에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불안에 지배당하거나 불안을 다스리거나 하는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다양하고 폭넓은 불안의 뿌리, 증상, 불안 장애의 원인은 “어린 시절에 받았던 여러 가지 상처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생리적 특성이 모여 형성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면서 부딪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스트레스로 작용하면서 불확실하고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되었다고 생각함으로써 크고 작은 불안 증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불확실성에 대한 내성이 없는 사람들 즉 불확실성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불안 장애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 장애는 ‘공황증상’으로 나타나는데요, ‘공황장애’는 갑작스러운 가슴 두근거림, 숨 막힘, 손발 떨림 등의 증상이 5~10분에 걸쳐 나타나면서 죽음에 이를 듯한 극심한 두려움에 빠지는 증상입니다.
그러면서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거 아냐?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어.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이러다가 죽는 거 아냐?’라는 공포감에 시달리다 응급실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막상 병원에서 검사해도 몸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하고 혼란에 빠지지만, 이것이 바로 공황발작이었던 것입니다.
공황발작을 겪게 되면 ‘또 이런 증상이 생기면 어쩌지?’, ‘또 이런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면 못 살 것 같아.'라는 예기불안(anticipatory anxiety)이 생기는데요, 공황발작과 예기불안(anticipatory anxiety)이 모이면 공황장애라고 진단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증상들이 생기는 걸까요?
첫 번째, 긴장 반응 때문입니다.
스트레스받고 예민해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 곤란과 함께 땀이 많이 나면서 얼굴이 빨개지고 혈압이 오릅니다. 또한, 손발이 떨리고 몸이 굳는 듯한 마비의 느낌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런 것들은 긴장반응, 즉 우리 몸이 생리적으로 과잉반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불안 증상의 한 축입니다.
두 번째, 인지적 불안입니다.
불안의 근원에는 재앙화 사고, 낮은 자기효능감, 회피나 통제 행동이 자리 잡고 있는데 각각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뛰면 ‘이러다 죽는 것 아니야?, 심장마비 오는 것 아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잠깐 들른 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지도 몰라.’
아이와 잠깐 연락이 안 될 때는 ‘무슨 큰일이 생긴 것 아냐?’, ‘나쁜 일이 생겨서 연락이 안 되는 것 같아.’
이렇게 일상이 불편해질 정도로 극단적이고 비관적인 일이 생길 것 같은 상상을 “재앙화사고”라고 합니다.
별것 아닌 사소한 일, 혹은 발생 가능성이 희박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것 같다고 생각하다 보면 마음속에서는 공포가 일어납니다.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으니까요.
“낮은 자기효능감”은 불안 상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휩싸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황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믿으면 불안감을 덜 느끼는데요,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이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 숨이 막히긴 하지만 잠시 자신을 다독이면 충분히 진정할 수 있어’, ‘나는 항상 편안하게 잘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이 있으면 불안감이 내려가는 것이죠.
그러나 세상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교통사고, 화재, 건강문제 같은 사건 사고가 예고 없이 발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무리 건강관리를 잘해왔다 하더라도 갑자기 암 진단을 받거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우연히 발견되기도 하니까요.
이러한 여러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갈 자신이 있다, 나는 그럴 능력이 있다'라고 스스로 믿게 되면 자기효능감을 느끼게 되고 불안을 잘 다스리게 됩니다.
“회피”는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을 느끼면 아예 그런 상황을 접하지 않으려고 도망가 버리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회피 행동이 비행공포증 같은 것인데요, 공황장애 환자분들은 비행 중 공황발작이 생길까 봐 아예 출장이나 여행조차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너무 두렵기 때문이죠.
또한, 건강염려증 환자들이 오히려 건강검진을 안 받으려는 경우도 이에 해당하는데요, 안 좋은 진단을 받게 될까 두려워 아예 검사 자체를 회피합니다.
다리 건너는 것이 불안한 사람은 다리를 피해 멀리 돌아가고, 사람 만날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뛰는 사회불안장애 환자들은 아예 대인관계를 피해버립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회피행동이라고 하는데요, 불안이 심할 때 나타나는 행동 반응이죠.
회피하면 편해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회피 행동을 통해 불안이 강화되고 증폭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과도하게 “통제”하려는 행동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길까봐 항상 잔소리하고 끊임없이 연락하며 자녀를 통제하는 것, 오염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걱정에 손을 계속 씻는 강박 장애 증상, 건강이 염려되어 지나치게 자주 병원에 드나드는 일들도 통제로 불안을 잠재우려는 통제행동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통제가 심할수록 불안은 오히려 더 증가하게 됩니다.
이처럼 불안은 긴장 반응과 재앙화사고 및 낮은 자기효능감, 통제와 회피의 행동 증상으로 나타나며 사람들이 말하는 다양한 불안증상은 대부분 이 범주 안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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