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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가져야 할 욕망과 욕심

K숲 2025. 3. 5. 08:30

[이서원*서강대 겸임교수]

 

 

[욕심]하고 [욕망]이라는 것은 인류의 산맥 같은 개념입니다. 동양에서는 보통 [욕심]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또 서양에서는 [욕망]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저는 욕심과 욕망이야말로 문명 발달의 근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사람에게 욕심이 없었다면 어떤 것도 건설하고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코로나 때 우리가 욕심을 냈기 때문에 치료제를 개발한 거거든요. 고통 없이 살겠다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코로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욕심과 욕망은 [취급주의 상품]이기 때문에 매우 다루는 걸 조심해야 합니다.

욕심과 욕망의 취급 방법

1. 방향 잘 잡기

첫 번째,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정말 “저 사람을 무너뜨리고 성공해야겠다”하고 욕심을 낼 경우에 그 사람을 파멸시키는 게 아니라 둘 다 파멸합니다. “남을 웃게 해서 나도 웃겠다.” 하는 욕심을 낼 때는 방향을 굉장히 잘 잡을 건데 나만 웃겠다고 방향을 잡는다면 정말 추악한 결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까요? “너를 웃게 해서 나도 웃겠다.”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모든 종교, 그리고 모든 문명 중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들은 누구를 미워하는 방향으로 잡은 적이 없어요. 기독교에서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왼쪽 뺨을 내줘라.’ 불교에서 ‘자비’. 이렇게 이야기한 것은 너를 웃게 해서 나도 웃겠다는 마음의 방향이 정확하기 때문에 수천 년이 지나도, 앞으로 수천 년 뒤에도 살아남을 건강한 욕심이고 욕망입니다.

 

2. 수준 맞추기

과하면 과유불급입니다. 욕심을 아예 안 내는 것도 어리석지만 욕심을 지나치게 내는 것도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소]라고 생각하면 딱 좋은 거 같은데요. 욕심, 욕망이 시소의 한 자리에 있고, 반대쪽에는 현실이 있어서 이것이 균형을 좀 잡는 게 필요합니다.

욕심을 쉽게 말하면 [되도 않는 걸 바라는 마음]이거든요. 자기의 능력은 이것 밖에 되지 않는데 너무나 큰 걸 바래요.

케이팝스타를 할 때 박진영 씨가 이런 명언을 했죠. “너무 안타까운 것은 정말 가수 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가수 될 목소리를 안 가지고 왔다.” 이것이 욕심이라는 거예요. 내 목소리가 받쳐주고 그 뒤에 가수가 되려는 마음도 있어야죠. 즉 현실과 욕심이 시소처럼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거죠.

현실과 욕심은 시소와 같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제 스승님께 “한국에서 지금까지 90년 사시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여쭸을 때 선생님께서 이야기하더라고요. “내가 병원에 있을 때 간호조무사로 있던 남녀 7명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행복해. 적당한 욕심만 부려. 의사 되겠다는 욕심도 아니고, 큰 집을 사겠다는 욕심도 아니고 그냥 월급이 얼마쯤 올랐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어울려서 맛있는 삼겹살 구워 먹고 소풍 가고. 그러면서 몇십 년을 사는데 과한 욕심을 전혀 부리지 않고 그냥 자기 있는 자리에서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을 서로 나누고 즐기면서 사는데,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한국 사람을 봤지만 그 일곱 명처럼 행복한 사람들은 보지 못했어.”

그 사람들이 바로 시소의 균형을 기가 막히게 잡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죠.

 

자기만 행복해지겠다는 마음,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어떻게 잡는가? 그리고 내 능력과 비례해서 욕심을 가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욕심을 낼 분야라는 게 있잖아요. 바로 [남을 웃게 하는 것, 그리고 나도 웃는 것]. 이런 분야를 잘 잡아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욕심을 내는 것이야말로 나를 발전시키고 세상을 빛나게 하는 아주 특효약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가장 중요한 것

나이가 들어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적당히 살려는 적당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몸은 약해지지만 정신은 빛나기 시작하는 시기 같거든요. 그 빛나는 정신, 그 좋은 머리가지고 뭘 하느냐? 치열하게 살아야 된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 진짜 내가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치열하게 할 수 있는 때입니다. 왜냐? 누구도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예전에는 조직 속에 브랜드를 가지고 살았잖아요. 그래서 은퇴하면 흔히 내밀 명함이 없어요. 그러면서 헛헛하고 허전하잖아요. 근데 내밀 명함이 없어질 때 인간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조직에서 내가 아니라 나로서 나의 모습을 드러내려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적당하게 나하고 타협하는 자세를 지양해야 합니다. 치열하게 나에 대한 불편감을 가지는 것, 그것이 나이 들어서 가장 필요한 미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책을 쓸 때 항상 제 책에 대해서 불편감을 가집니다. 다 쓰고 나서 ‘아, 이 챕터는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다음 책을 쓸 때는 이렇게 한 번 해야지. 다음에는 좀 더 생각해서 말해야지.’ 이렇게 적당하게 살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자기 성찰을 하면서 살아가려는 마음이야말로 비록 몸은 나이가 들지언정 마음은 점점 젊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회동 回童], 즉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의 동심에 찬 눈빛과 나이가 든 사람의 동심의 찬 눈빛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또 다른 것입니다. 잘 모르는 아이의 순수한 동심과 무엇인가를 충분히 치열하게 살았을 때의 하얗고 투명하게 되는 그 맑은 눈빛은 정말 깊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 눈빛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적당히 남 따라서 살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사람은 20대지만 이미 80대인 것이고, 반대의 마음으로 산다면 80이더라도 20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당주의를 내 속에서 몰아낼 것. 이것이 나이 들었을 때 가장 필요한 미덕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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