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초등교사, 작가]
엄마가 된 마흔, 분리의 완성을 시작할 때
인간의 중간항로 시기인 마흔 즈음에 부모로서, 엄마로서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을 잡아줘야 합니다. 첫 번째는 ‘분리 완성’입니다. 분리 완성이라는 건 자녀와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엄마가 비로소 어른이 되는 과정이 요구됩니다.
낚시를 해보셨는지 모르겠는데요. 낚시하면 물고기가 걸리면 낚싯대가 팽팽해집니다. 자녀의 관계 안에서도 팽팽해지는 시기가 올 겁니다. 점점 훨씬 더 자주 올 거고, 강도도 세질 겁니다. 낚시는 그 팽팽해진 순간에 잡아 올리지만 분리의 완성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낚시질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또다시 팽팽해지면 또 느슨하게 풀어지고 또 팽팽해지면 느슨하게 풀어주는 겁니다. 이 과정이 자녀와의 분리의 완성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자녀와의 분리보단 애착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런데요, 애착 시기는 끝났습니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왔다면 더 이상 애착에 신경을 쓰시면 안 됩니다. 원칙적으로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분리가 시작됐습니다. “선생님, 안정 애착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이게 정말 중요하죠. 그런데 안정 애착이 왜 중요한지 분리의 의미에서 제가 말씀드릴게요.
처음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는 엄마와 나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는 엄마의 심장 소리가 내 심장 소리고, 엄마의 피가 나의 피고, 엄마의 숨결이 나의 숨결입니다. 엄마와 나는 온전하게 하나로 합체되어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엄마의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갑자기 환한 불빛, 소리가 들리고, 공기가 차갑고…. 아기의 입장에서는 거의 죽음의 공포와 가까운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순간에 <안정 애착>이 필요한 거예요. 이 안정 애착 기간이 만3세까지입니다. ‘너는 엄마 배에서 나왔으나 아직 엄마 배 속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라는 일종의 착각을 일으키게 해 주는 거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엄마 뱃속에서 나온 이미 하나의 큰 분리를 시작한 겁니다.
그러한 분리의 여정은 계속 이어집니다. 엄마 젖을 떼는 것도 분리이고요. 그리고 이유식을 먹게 되고, 기저귀도 떼고 혼자 화장실도 가야 합니다. 분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고 하고, 유치원에 가야 한다고 하죠. 초등학교까지 점점 거리감이 멀어지는 과정이 옵니다.
엄마 나이가 마흔이 됐는데 아직도 자녀에게 어떤 애착이 강하게 남아 있고,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갈수록 우리 아이와 애착감이 더 강해진다, 혹은 애착감을 강해지지 않으면 좀 불안하다면 이 자체로 서로를 위험하게 만든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비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서 계속 1년이고 2년이고 3년이고 계속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안타깝지만 아기와 산모 모두 위험해지는 겁니다. 애착이 바로 그런 관계입니다. 일정한 순간까진 더없이 보호해주고 안전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반드시 분리를 이루어야 합니다. 아이가 초등 시기가 끝날 즈음 그리고 엄마가 마흔에서 이제 좀 더 다른 나이로 올라가게 되면 자녀와 분리의 완성을 이룬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금 분리의 완성을 향해서 제대로 가고 있는지 가고 있지 않은지를 살펴보려면 ’아이의 활동 범위’를 보시면 됩니다. 우리 아이의 활동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아이가 넓어진 활동 범위 안에서 혼자서 또는 엄마가 아닌 타인들과 활동하는 시간이 점차 학년이 올라갈수록 늘어나고 있는지. 그렇다면 분리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나로서의 마흔, 자기 성찰의 시작
자녀와의 관계에서는 분리가 완성을 향해 간다면 마흔 즈음의 나로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자기분석' 또는 '자기 성찰'이라고 하는데요. 제일 좋은 건 정신분석가의 도움을 받으면 안전하게 자기 자신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분석가를 만나러 가야 하는 문턱이 매우 높죠. 시간도 그렇고 비용도 그렇고…. 정말 다행인 건 요즘에 정신분석가들의 읽고 이해하기 쉬운 좋은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신분석과 이무석 교수님의 책들을 추천합니다. <휴>라는 책도 있고요, <자존감>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분들은 박우란 정신분석가의 책도 추천해 드립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분석해서 나 자신이 엄마라는 이름 이외에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기적으로 혼자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혼자만의 여행을 가시면 좋습니다.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 가서 수다 떨고 뭘 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1박을 하면 좋고요. 2박을 하면 더 좋고요. 3박을 하면 더욱더 좋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1박이라뇨. 반나절 시간 내기도 어려워요.” 예, 그러면 반나절이라도 좋습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이면 좋고, 두 달에 한 번이라도 정기적으로 혼자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갑니다. 가능하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좋습니다. 멀리 떨어진 어느 방에 가서 어떤 여행지여도 좋고, 조용한 곳이어도 좋습니다. 요즘에 시골에서 하루 살기 체험이 많으니 시골집을 잠시 가 있을 수도 있죠. 꼭 시골이 아니라도 도심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안전한 공간에 가서 혼자 머물러있습니다.
처음엔 일단 잠만 자도 됩니다. 잠만 잘 자고 와도 성공한 겁니다. 다음에 가서 또 잠자도 괜찮아요. 그렇게 두 번 세 번 정도. 어떤 안정감을 느끼고 ‘아, 여기서 나 혼자 있구나. 이제 좀 내가 무언가를 생각하고,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의 안정감이 느껴지신다면 그때부터 작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작업이냐, 글을 쓰는 겁니다.
나에게 떠오르는 어린 시절에 관련돼서 글을 씁니다. 맨 처음에 생각났던 시기부터 해도 되고 그냥 생각나는 순간부터 해도 되고, 즐거웠던 것부터 해도 되고, 슬펐던 것부터 해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상관이 없어요. 단, 조건은 나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겁니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펜을 내려놓게 됩니다. 더이상 쓸 수가 없어요. 막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또 화가 나서 손이 부르르 떨리기도 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럴 땐 잠시 멈추었다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아니면 다시 또 잠을 좀 자다가. 잘 먹고 일어나서 다시 써 내려가는 겁니다.
그렇게 적어 내려가다 보면 ‘이 정도 분량이면 일정한 스토리가 나왔네.’라고 생각할 즈음에 이제 그걸 나의 목소리로 녹음하는 겁니다. 녹음해서 산책할 때 나에게 들려줍니다. 이어폰을 꽂고 들으면 되겠죠. 그리고 천천히 산책합니다. 어떤 현상이 일어나냐면 나에게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면 나의 이야기가 마치 머릿속에서 상상이 되든 그림이 그려지면서 스크린에 무언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의 이야기가 쫙 스쳐 지나갑니다. 이런 작용을 전문용어로 메타인지가 발동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이야기가 내 화면 스크린 안에 펼쳐지면서 나와 떨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 과정을 하다 보면 마찬가지로 발걸음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너무 힘들어서 잠시 벤치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또는 눈물을 흘리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괜찮습니다. 그만큼 나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은 힘든 겁니다.
그러한 과정들을 겪고 다시 글을 쓰고 다시 들려주고, 또 글을 쓰고 들려주고 글을 쓰고 들려주고 하다 보면 결국 대부분은 내가 나에게 이런 말을 던져 줍니다. ‘나 자신아, 미안해. OO야, 미안해. OO아, 왜 안 해?’ 내가 나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받게 됩니다. ‘언제야 알아? 죄책감 갖지 마. 그땐 네가 너무 어렸잖아. 미안해. 그건 어쩔 수가 없었어.’ 미안하다는 말 안에는 이런 말이 내포된 겁니다. ‘걱정 하지마. 지금은 내가 어른이 됐어. 이전과는 다르다. 네가 그렇게 힘들게 힘겨워하고 무서워했던 그 어린이가 아니야. 난 이제 어른이 됐어. 지금 그래도 뭐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이렇게 서 있을 수도 있고, 나의 공간도 있고 나의 이름이 있어 걱정하지 마.’하면서 내 안에 계속 나와 함께 있던 그 아이를 이제 보내주시는 겁니다.
어떻게 보내주냐면 이것도 상징적이고 구체적으로 보내주시면 돼요. 지금까지 내가 적었던 글 있죠. 그 글을 잘 접어서 박스 안에 넣어줍니다. 그리고 그 박스를 만약에 태울 수 있다면 잘 태우고, 또는 집 안에서 가장 깊숙한 이불장 같은 곳에다가 상자에 리본을 잘 달아주고 넣어주는 겁니다. ‘이제 너는 그만 쉬어도 돼. 앞으로 이 일은 내가 감당하고 갈게.’ 내면의 상처받고 힘들었던 그 아이를 보내고 나면 나는 드디어 이제야 마흔이 넘어서야 어른이 된 겁니다.
여기서 아직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한 가지 과정이 더 있습니다. 뭐냐면 찾아가서 말하라는 겁니다.
그런 글을 적다 보면 나에게 상처를 줬던 혹은 힘겨움을 줬던 누군가를 알게 됩니다. 대부분은 안타깝지만 엄마나 아빠나 주변에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말하는 겁니다. “엄마, 왜 나한테 그때 그렇게 얘기했어. 그때 엄마가 나한테만 잘 얘기해줬어도 나는 바이올린을 하고 있었을걸.” 그러면 친정엄마가 뭐라고 대답할까요? “아이고, 미안하다.” 그럴까요? 아닙니다. “내가 언제 그랬냐”라고 합니다. 또는 “인제 와서 싸우자는 거냐?” 이러한 어떤 회피나 강한 저항에 마주하실 겁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건 찾아가서 말을 하라는 건 화해를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제 그때는 하지 못했던 것을 어른이 되어서 내가 할 수 있게 되었음을 그냥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시면 돼요. 나는 어른이 되어 있습니다. 혹시 그렇게 말해야 할 대상이 이미 돌아가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무덤에 찾아가서 넋두리하듯 그 말을 하시면 됩니다.
어른이 되는 것은 그냥 마흔이 되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 내면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성장해왔습니다. 그 아이를 이제 보내줘야 합니다. 보내주는 과정은 지난 나의 여정을 되짚어보면서 살펴보는 과정 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마흔 즈음 어머님들 꼭 나 자신을 찾아 씻고 엄마로서가 아닌 한 여성으로서, 나로서 이제 마흔즈음에 어른의 위치에 서시기를 응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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