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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에게 묻다

K숲 2023. 12. 20. 08:00

[유시민*작가]

 

유시민 작가에게 묻다
유시민 작가에게 묻다

 

 

독서습관 기르기

초등학교만 다니고도 해방 직후 교원 자격시험으로 교사가 되신 제 아버지는 집에서 항상 책을 읽으셨고, 한글도 한문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머니 또한 결혼 후 아버지에게 꾸준히 한자를 배워서 나중에는 국한문 혼용 신문과 소설 등을 많이 읽으셨습니다.  그래서 집안에는 언제나 여기저기 책이 굴러다녀서 심심하면 아무거나 펼쳐 읽다 보니 저절로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죠.  어린 시절,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책을 만나 자발적으로 읽게 되면서 독서를 즐기는 삶이 시작된 것 같아요.

 

책이 널린 환경을 조성해도 책과 가까워지기 어려운 사람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집에서 어른들이 자주 책 읽는 모습을 보일수록, 생활공간에 책이 많을수록 아이들도 책을 좋아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책은 자극적인 요소가 거의 없는 문자 위주의 텍스트라서 재미를 최우선으로 선택해야 하는데도, 간혹 추천도서나 필독서 위주로 무작정 아이들에게 들이미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오히려 책과 멀어지게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한 분야의 책만 파고 들어가며 읽는 경향이 있어서 많이 읽어도 걱정이라고도 하지만 어떤 장르든 많이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로 넘어가게 되니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인문학과 과학

저는 15년 전인 50세 즈음, 우연히 과학책을 접하고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해서 과학분야의 책을 계속 확장시켜 읽다보니, 그동안 알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을 공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최근에는 미토콘드리아 관련 책을 읽고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로만 계승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최초의 인류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모계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국회의원 시절에 호주제 폐지 찬반 논란으로 무척 시끄러울 때, 이런 지식을 가지고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 논리를 펼쳤다면 훨씬 더 간단하게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여건이 되면 분자생물학이나 동물행동학 같은 것을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다고도 생각하게 되었어요.

 

요즘에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 학교에 가지 않아도 잘 만들어진 과학 관련 영상이 너무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려 있으니, 여러분도 과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껴보기 바랍니다.

 

인문학은 현재 시점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계속 발전해 가며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문학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하는데도 제대로 된 증거는 거의 없어서 난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책을 많이 읽으며 다양한 이론을 접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학문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학 전공자들이 추가로 인문학을 섭렵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저처럼 인문학만 파던 사람이 뒤늦게 과학에 흥미가 생겨 공부하려면 쉽게 습득할 수 없는 고난도의 수학적 지식을 넘어서기가 몹시 어렵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죠.  방정식을 알아야 과학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오랫동안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문학적 질문의 답을 찾아 왔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을 통해 우리 몸을 이루는 물질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그것들이 왜 이런 식으로 모여 내가 된 것인지 구체적인 정보를 알게 되면서, 인간의 정신과 행동 양식을 연구하는 인문학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인간을 이루고 있는 물질의 상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인문학 전공자들의 과학 공부를 적극 추천하게 되었는데요, 

인문학 전공자들이 접하게 되는 과학적 질문은 인문학과는 완전히 결이 달라서 명확하고 확실하기 때문에 굉장한 지적 자극으로 다가와 풀리지 않던 의문에 너무나 간결한 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문과와 이과

심도 있는 학문의 연구를 위한 문과, 이과의 분리는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두 분야의 상호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가 본인이 원할 때 자유롭게 넘나들며 공부할 기회 정도는 열어두는 장치가 필요해요.

인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은 1977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지만, 저는 30년 가까이 그 책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 책을 조금 일찍 만났다면 생물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알아낸 사실들을 바탕으로 사회과학이론에 대해 훨씬 폭넓은 해석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아쉽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이과생도 인문학의 기반이 되는 분야를 만날 수 있고, 문과생도 과학의 명료함을 만날 기회가 곳곳에 있어서 자발성을 기본으로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면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폭이 놀랄 만큼 확장되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년기의 자기 확장

노년기로 들어갈수록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새로운 경험의 기회도 줄면서 위축되고 옹졸해지기 쉽죠.  이커다란 간접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책읽기 새로운 정보와 이론을 배우고 새로운 질문으로 지적 자극을 이어나가며 지속적으로 데이터 업데이트를 가능하게 합니다.

나이 들며 필연적으로 만나는 지적 정서적 퇴화에 대한 의학적 처치를 기대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에 자신의 노력으로 새로운 데이터를 지속해서 넣어주는 것이 거의 유일한 대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혼자서 책 읽고 유튜브에서 좋은 강연을 찾아 공부하는 것도 괜찮지만, 사회적 관계가 갈수록 협소해지는 노년기에는 방송통신대학에 등록하여 정해진 기간 안에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소속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편이 더 즐거울 것 같아요.

혹자는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뭘 또 배우냐고도 하지만, 배우는 과정 자체가 신나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 공부함으로써 최대한 노화를 늦추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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